- 장소 : 베른 역사박물관 (Bernisches Historisches Museum)
- 위치 : Helvetiaplatz 5, Bern 3005 Switzerland
“앞사람이 빵을 다 사 가서 너무 럭키하게 갓 나온 빵을 받게 됐지 뭐야! 완전 럭키비키잔앙~🍀“와 같이 초긍정 마인드 신드롬을 일으킨 원영적 사고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를 시작으로 유명 연예인들의 사고방식이 화제가 되며 독기 가득한 ‘희진적 사고 ‘, 어떤 일이든 여유롭게 생각하는 ‘동원적 사고 ‘ 등 그들의 이름을 딴 ‘OO적 사고’라는 밈이 인기를 끌고 있어요.
이는 인기 있는 연예인들의 외적인 면에서 더 나아가 취향과 가치관, 성격까지 닮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건데요. 특정 인물을 정해 닮고자 하는 이 욕구를 ‘추구미’라고 부른대요!
(기사 원문)
요즘 원영적 사고에 관한 밈이 정말 많이 보여. 거기에 더하여 장원영 씨가 읽는 책까지 덩달아 화제야. 바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지. 그녀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적 철학이 오히려 초긍정의 상징이 되어버린 그녀에게 위안이 될 때가 많았다고 해. 근데 그거 알아? 100년 전 어느 유명한 과학자도 젊은 시절 쇼펜하우어의 철학으로부터 많은 위안을 받았다는 거.
쇼펜하우어의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할 수는 없다(Der Mensch kann tun was er will; er kann aber nicht wollen was er will.)’는 말은 젊은 시절부터 나에게 참된 감화를 주었다. 이 말은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난에 부딪힐 때마다 계속 위안이 되었고, 마르지 않는 관용의 원천 구실을 했다. 이런 인식은 쉽게 마비되는 책임 의식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지나치게 엄숙해지는 것을 막아 주며, 특히 유머를 높이 사는 인생관을 갖게도 해준다.
<포럼과 세기> 제84권에 아인슈타인이 기고한 글. 1931년.
아인슈타인은 철학적 의미에서 인간의 “자유 의지”를 전혀 믿지 않았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지 안 할지를 결정할 자유는 인간에게 있을 수 있지만, 자신이 무엇을 원할지에 대해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고 본 거야. 즉, 인간 행동의 대부분 동기는 타고난 유전자와 주변 환경의 자극에 의해 비롯되었다는 입장에 가까웠어. 유년 시절의 경험은 성인이 되어서도 사고와 판단에 끊임없는 영향을 주기 마련이잖아. 그리고 대부분의 유년 시절엔 주변 환경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매우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자유 의지가 아닌 주변 환경의 요구에 의하여 내가 원하는 것들이 설정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어. 그런 관점에서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타인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고 말했던 것 같아. 내가 만약 그 사람과 똑같은 신체 조건과 주변 환경을 가졌다면 나 역시 그 사람처럼 행동했었을 테니깐.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였을 테고.
사실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철학이 생겨난 이래로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어. 현대 뇌과학의 여러 실험들은 아인슈타인의 견해를 지지하는 쪽에 가까워. 우리의 뇌는 과거 경험에 의하여 학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쳐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자동화되어 무의식적으로 반응을 한다는 증거들이 많이 발견됐기 때문이야.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논쟁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어떤 사람이 잘못된 행동을 하였을 때 자유 의지가 없었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야. 이에 대하여 책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의 저자인 뇌과학자 벨벳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책임이 당신에게 있다.”라고 주장해. 당신의 잘못된 행동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라는 거지.
어쩌면 아인슈타인 역시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통하여 책임이란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벌을 받는 것”이 아닌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로 인하여 그 역시 “쉽게 마비되는 책임 의식“을 부드럽게 어루만질 수 있었다고 말했던 것 같아.
그는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강연에서 “독립적 사고“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어. 주변 환경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담담하게 받아들였기에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위한 노력을 그는 평생 숙명처럼 했었던 것 같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창의적인 사람들만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그 누구보다 굳게 믿었기 때문 일거야.
여기서 내가 말하는 ‘책임’은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비극이나 그 결과로 경험하는 역경에 대한 책임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접할 모든 상황을 선택하지 못한다. 우울증, 불안증, 또는 그 외에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때로는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책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중에서
근데 오늘의 장소는 왜 스위스의 베른 역사박물관이냐고? 베른 역사박물관은 아인슈타인 박물관이라고 불리기도 해. 아인슈타인의 생애와 업적을 다루고 있는 특별 전시관이 있기 때문이야.
아인슈타인은 1902년부터 1907년까지 살았어. 베른의 특허청에서 근무하면서 1905년 세상을 놀라게 하였던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였지. 아인슈타인은 특허청에서 근무하던 시기를 “내 인생에서 가장 창의적인 시기“였다고 말했어. 후대 과학자들은 특허청에서의 근무가 아인슈타인의 사고 실험 능력을 향상 시켰으며 베른의 문화 정치적 환경이 그의 창의성을 더욱 자극했을 거라고 보고 있어. 이렇듯 우리는 끊임없이 환경의 영향을 받는 존재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