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소 : 미나 페르호넨 디자인 여정: 기억의 순환
- 위치 :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DDP 전시 1관(B2F)
‘직물에 쓰는 시, 일상 속 특별한 기억을 품다’
국내 최초, 일상 속 특별한 기억을 동화 같은 직물로 엮어내는 텍스타일 디자인 브랜드, ‘미나 페르호넨(minä perhonen)’의 전시 <미나 페르호넨 디자인 여정: 기억의 순환>이 DDP에서 열립니다.
미나 페르호넨은 텍스타일 디자인을 기반으로 하는 의류 브랜드야. 창업자는 미나가와 아키라.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을 붙잡아 마치 따뜻한 동화처럼 묘사해 낸 스케치가 그의 손을 거쳐 직물 위 무수히 반복되는 패턴으로 아로새겨지지. 토끼, 사자, 새, 꽃잎 등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패턴들. 그 모양 만큼이나 무수히 반복되어 온 그의 일상과 스케치들이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어. 작품들은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기억을 반영하며 무한히 비추는 방식으로 맺어진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해.
창업자 미나가와는 학창 시절 육상 선수가 되길 원했어. 하지만 큰 부상으로 인해 꿈을 접어야만 했지. 대학교 입학마저 실패하자 그는 도망가듯 일본을 떠나 파리로 향했어.
파리 어학원에서 만난 친구로부터 우연히 받게 된 제안이 그의 진로를 바꾸었어. 그 제안은 다름 아닌 옷 수선 작업 아르바이트. 그는 처음 해보는 바느질이었기에 당연히 많이 서툴렀고 어색했지. 하지만 그는 무언가에 끌린 듯 이 일을 끝까지 해보기로 결심을 해.
나는 패션 업계로 진로를 결정하면서 한 가지 마음먹은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그만두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애초에 못하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데는 고작 몇 년이 아니라 몇십 년을 꾸준히 노력하면 어떻게든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책 <살아가다 일하다 만들다> 중에서
파리에서 돌아온 미나가와는 낮에는 봉제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패턴과 봉제 등의 실무를 배우는 문화복장학원에 다녔어. 당시 그는 디자이너가 될 생각은 없었기에 봉제 기술을 익히는 데 중점을 두었지.
하지만 문화복장학원에 입학한 이듬해 떠난 핀란드 여행에서 그의 꿈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하게 돼. 그가 핀란드 여행을 하게 된 건 오래전 할아버지와의 추억 때문이었어. 할아버지께서 운영하던 가구점에서 취급하던 마리메코 텍스타일이 갑자기 떠올랐던 거야. 그 때의 따뜻한 기분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던 거지.
나를 핀란드와 이어준 것은 마리메꼬(marimekko)라는 브랜드였다. 조부모님의 수입 가구점이 마리메꼬의 텍스타일을 취급했고 백화점 등에도 납품을 하고 있었다. 밝고 거침없는 마리메꼬의 텍스타일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핀란드 브랜드라는 것을 기억해 두었다. 핀란드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일단은 핀란드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헬싱키(핀란드 수도)에서 마리메꼬 매장에도 들렀다. 조부모님의 매장에서 취급하던 마리메꼬, 게다가 본고장의 마리메꼬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가게 안에는 천과 깔끔한 양복이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었다. 그 색과 모양에 둘러싸여 있는 것만으로도 풍요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책 <살아가다 일하다 만들다> 중에서
친구의 우연한 제안을 선택으로 바꾸는 일. 할아버지와의 따뜻했던 추억에 대한 갈망. 사이 사이 반복되는 엇갈림과 미끄러짐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일상의 다짐. 뜻밖의 우연과 잊혀졌던 기억들이 한데 엉기어 새로운 꿈이 되었고, 그 꿈이 다시 그의 과거와 현재의 경험에 다채로운 의미를 새기었어.
사람들이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옷을 만들어 100년이 가는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다짐이 사랑 받는 디자인을 통해 그 옷을 입는 사람들과 좋은 기억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결심이 되었고.
우리가 손님에게 제공하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좋은 기억이다. 결국은 형태가 있는 물건,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람 안에 남는 좋은 기억을 만드는 계기가 되는, 그것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나는 항상 궁금했다. 지금 만들고 있는 이것이 이것을 사고 입고 사용하는 사람에게 좋은 기억이 될 수 있을까.
책 <살아가다 일하다 만들다> 중에서
제 어머니는 소녀 같은 마음을 가진 분이셨고,
제가 미나의 옷을 입으면 언제나 눈을 반짝이며 기뻐하셨습니다.
가족으로부터 어머니의 소식을 듣고 바로 귀국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망설임 없이 이 옷을 입고 일본행 비행기에 올라 어머니가 기다리는 병실로 달려갔습니다.
어머니가 떠나실 때,
어머니의 눈에는 이 원피스를 입은 제가 보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후로는 파리의 하늘 아래에 있어도
어머니에게 보호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마치 부적 같은 한 벌입니다.
임신 중에도 자주 입었고,
출산을 위해 병원으로 갈 때에도 이 옷을 선택했습니다.
– 전시된 옷의 설명 중
센티는 지금 하는 일이 혹시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있어?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에 지쳐 많은 현대인들이 번아웃에 빠지곤 하잖아. 하지만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여겨졌던 나날들이 혹은 그 무료함이 없었다면 시도하지 않았을 도전과 실패들이 어느 우연과 만나 “안녕, 사실 나였어 꿈!”하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인사를 건네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몰라. 그 꿈은 다시 우리 과거 기억에 다채로운 색을 덧입히고 현재 경험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줄 테고. 그 꿈을 좇는 우리는 과거-현재-미래를 이어주는 내 자신보다 더 크고 고귀한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는 충만함을 느낄지도 몰라. 미아가와의 꿈이 그러하였듯.
“어시장에서 재료의 중요성과 장인의 자세 같은 걸 배웠습니다… 모든 일에는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꿈을 꾸고, 그걸 좇는 중에 발견하는 모든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걸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롱블랙(미나 페르호넨 : 좋은 디자인은 만드는 사람의 기쁨에서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