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향기(香氣)
한국의 향(香)이라고 하면 어떤 향기가 떠오르시나요? 탑골 공원의 향기, 제사 때 태우는 향, 한의원이나 절의 냄새, 한옥의 향기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향수나 아로마테라피는 유럽이 원조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향료와 향신료는 동방에서 시작되었답니다. 중국에서 오래전부터 사용된 사향(Musk)과 인도의 백단향(Sandalwood)은 오리엔탈 향료로 잘 알려져 있죠. 레몬과 오렌지도 이탈리아가 원산지라고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중국과 인도에서 12세기에 아랍 상인들에 의해 지중해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동방의 해 뜨는 나라, 한국의 향 역사에 대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우리나라의 향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논문을 참고하여 요약해 보았습니다.
고대, 삼국시대
한국 고대 향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우리나라 건국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雄(웅)이 무리 삼천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神壇樹(신단수) 밑에 내려와 여기를 神市(신시)라 이르니, 이가 桓雄天王(환웅천왕)이란 이다.”
-삼국유사-
여기서 박달나무 ‘단(檀)’은 ‘향을 품은 나무’, 즉 단향목(檀香木, Sandalwood)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한국 전통 향기요법에 대한 문헌적 고찰, 송영아).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눌지왕 때 중국의 양나라에서 향료와 옷감을 보내왔는데, 마침 신라에서 포교 활동을 하던 고구려의 승려 묵호자가 이 물품들이 불전에서 기원하는 데 쓰는 물품이라고 설명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래서 왕녀의 병환에 향을 사르고 축원하자 질환이 나았다고 하죠.
‘행향(行香)’은 부처님에게 올리는 예로서, 향로를 받쳐 들고 불전 안을 돌면서 행하는 의식을 말합니다. 634년 백제 무왕(武王)이 왕흥사(王興寺) 준공 후 행향하였다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시대, 통일신라의 문화재
문화재를 통해 향의 사용에 대해 알아볼까요?
고구려의 쌍영총 고분벽화 동쪽 벽에는 아홉 사람이 걸어가는 그림이 있는데, 맨 앞에 가는 소녀가 향로를 머리에 이고서 두 손으로 받든 장면이 있습니다. 당시 향의 사용이 불교 공양, 천도의식 등의 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벽화 외에 남아있는 삼국시대 향 관련 유물로는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가 있습니다. 앞발을 치켜든 용 한 마리가 막 피어날 듯한 연꽃 봉오리를 물고 있는 듯한 멋진 향로죠. 그리고 통일신라의 에밀레종에는 연꽃 송이 모양의 향로를 들고 있는 향공양상이 부조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
호국불교를 바탕으로 행향(行香)에 대한 부분과, 사신 등 귀한 손님을 맞을 때 향(香)을 이용한 예식(향의, 香儀), 신하의 부고를 접하고 유향(乳香), 전향(栴) 등 향을 내리는 등 장례에 사용된 기록 등이 다양하게 있습니다. 고려말 충숙왕 은 성격이 깔끔해서 목욕물에 넣는 향료(香料)의 양이 한 달에 10여 동이나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송나라 사신이 집필한 《고려도경 高麗圖經》에서는 고려의 귀부인에 대한 묘사도 보이는데, 비단으로 만든 향낭을 차고 다녔다고 해요. 향낭의 수가 부귀의 정도를 나타낸다 고 할 만큼 고려시대 귀족들 사이에 향의 소지와 활용이 일반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향약(香藥)은 향기가 나는 약재로, 약용과 불교 의식, 실내 발향, 미용 등의 목적으로 왕실과 귀족 사회에서 많이 요구되었습니다. 일부는 조공무역의 형식으로, 일부는 무역을 통해 다양하게 수입되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 향 관련 유물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청동 병 향로인 청동연지형병향로(靑銅蓮枝形柄香爐)가 있습니다. 또, 고려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경에 만들어진 청자 향로인 국보 제60호, 청자 사자형 뚜껑 향로가 있고, 봉업사명청동향로(奉業寺銘靑銅香爐)나 표충사(表忠寺) 청동은입사향완(靑銅銀入絲香垸)도 독특한 고려의 향로입니다. 이 밖에도 청자향유병과 귀족층에서 향유를 보관하는 용도였을 것으로 추측하는 작은 청자 유병도 다수 있다고 합니다. (전완길, 1999)
조선시대
조선에서도 행향(行香), 혼례 의식, 책봉 의식, 관례 의식 등에 향을 사용하였습니다. 세종실록에는 왕족의 시신을 목욕시킬 때 내의원에서 준비한 향탕(香湯) 으로 몸을 씻겨, 부패하기 쉬운 시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막고자 했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그리고 국가적인 의례에 자주 향(香)을 사용하다 보니, 향을 전문적으로 맡아 관리하는 관청과 직책인 행향별감(行香別監), 전향별감(傳香別監)도 두었습니다.
조선에서는 향약(香藥)의 국산화에 힘썼는데,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치료용 약재로 사용되었던 비싼 방향 식물을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국산화시킴으로써, 이후 다양한 계층에서 치료와 생활 속에 방향 식물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향 관련 유물로는 황동제 제례용 향로와 향합, 백자청화사괘문향로(白磁靑畫四卦文硯滴) 등과 향낭(香囊), 향 노리개, 부채 끝에 다는 장식인 향선추(香扇墜), 향이 나는 허리띠인 향대(香帶), 의복이나 갓, 관모 등을 장식했던 향영자(香纓子) 등의 장신구가 있습니다.
향 노리개는 주로 여름철에 양반가의 여인들이 많이 사용한 것으로, 노리개에 향을 넣어 차면 은은한 향기가 주위에 퍼지고, 향(香) 대신 약을 넣어 응급 시에는 구급약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궁중의 내실(內室)에 장식되었던 운봉수(雲鳳繡) 향낭은 지금의 디퓨저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의 향 사용법
우리나라의 향 사용은 직접적으로 몸에 향수를 뿌리는 서양의 문화와는 좀 다릅니다.
내 몸에 직접 향을 입기보다, 향낭과 향 노리개, 향베개 등을 통해 은은하게 향이 스며들게 하는 간접적인 향사용 문화라고 할 수 있어요. 체취가 심하지 않은 한국인의 특성상, 강한 향이 필요 없어서 일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직접적인 표현보다 간접적인 표현을 멋지게 평가했던 가치관도 녹아있는 것 같습니다.
향수 대신 향낭, 어떠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