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소 : 노고단 봉우리
- 위치 : 전남 구례군 토지면 반곡길 42-237
현대인의 특질이요, 질환인 자의식(自意識) 과잉은 이런 권태치 않을 수 없는 권태 계급의 철저한 권태로 말미암음이다. 육체적 한산, 정신적 권태, 이것을 면할 수 없는 계급이 자의식 과잉의 절정을 표시한다.
이상의 수필 <권태> 중에서
건강이 좋지 못했던 작가 이상은 요양을 위해 농촌으로 내려가 잠시 지냈는데, 그때 쓴 수필이 바로 위에 인용한 <권태>야. 도시 생활에 익숙했던 모더니스트 이상은 시골 자연환경에서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한 채 매우 권태로운 나날을 보내지.
“끝없이 펼쳐진 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초록색은 무미건조할 따름이다.”
그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도 점점 잃어갔어. 재밌는 건 그 결과 스스로 내린 진단이 “자의식 과잉”이라는 점이야.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캐릭터들의 심리 자문을 한 것으로 유명한 대커 켈트너 심리학 교수는 “경외심”이라는 감정의 전문가로도 알려져 있어. 그는 우리가 거대한 자연 앞에서 “경외심”을 느낄 때 비로소 자의식 과잉에서 벗어나 “작은 자기”를 경험할 수 있음을 실험을 통해 밝혀냈어. 88년 전 이상이 자신에게 내린 진단이 틀리지 않았던 거지.
경외의 감정을 통해 우리는 “자아”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 고 켈트너 교수는 그의 책 <경외심>에서 일관되게 주장을 해. 이런 경험을 통해 개인적 걱정들이 갑자기 순간적으로 너무나 사소하게 느껴지게 되기도 하고.
“이 거대한 우주의 작은 부분”이라는 겸손하면서도 연결된 감정과 느낌. 이를 통해 우리는 개인의 좁은 관점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되는 것 같아.
센티는 거대한 자연의 풍광을 바라보며 “경외심”을 느낀 적이 있어?
오늘의 공간으로 노고단을 선택한 까닭은 오래전 노고단 정상에서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던 별들을 보며 경외감을 느꼈던 감정이 떠올랐기 때문이야. 도시의 밤하늘에 보여지는 별들이 점점 줄어드는 만큼 어쩌면 현대인들의 경외감도 같이 줄어들었던 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어.
아! 하지만 경외심의 이 ‘작은 자기’ 효과는 비단 광활한 대자연을 마주했을 때뿐만 아니라 삶의 여러 가지 경로에서 고루 관찰될 수 있다고 해.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 누군가의 감동적인 삶을 목격할 때 등 우리는 삶의 다양한 순간 속에서 경외심을 느낄 수 있어.
센티, 혹시 해결되지 않은 걱정이 있다면 가까운 박물관에 가보는 건 어때?
왜 갑자기 박물관이냐고?
얼마 전 <서울 라이터>라는 뉴스레터에 소개된 온타리오 박물관의 캠페인을 보면서 경외심을 느낄 수 있었거든. 어찌 보면 박물관이야말로 인류의 경외심이 누적된 공간이 아닐까 싶어. 캠페인 영상을 소개하는 한 줄의 카피 속에도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이 잘 드러나고 있는 것 같아.
<We live on in what we leave behind>
우리는 인류가 남겨준 것들 속에서 생을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