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치 향수 하면 어떤 브랜드가 생각나세요?
조. 바. 딥. 세 브랜드가 니치향수의 대명사였던 때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요즘은 훨씬 다양해졌죠? 이제는 니치 라기보다는 럭셔리 니치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바이레도의 브랜드 스토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By Redolence, BYREDO
바이레도는 2006년 벤 고햄(Ben Gorham)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설립한 유럽 럭셔리 브랜드입니다. 추억과 감성을, 향기와 경험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바이레도는 감성적 접근 방식을 통해 현대적 럭셔리 브랜드 세계를 표현하고 있어요. 향수, 메이크업, 홈데코, 가죽 제품, 액세서리, 패션 등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가지고 있고, 창의성을 통해 사람과 삶에 의미와 영감을 주는 시대를 초월한 제품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바이레도(BYREDO)는 ‘바이 레도런스(By Redolence)’의 줄임말 입니다. 레도런스(Redolence)는 영국의 고어로 ‘향기’라는 의미가 있어요. 그래서 ‘향기에 의한’ 이란 뜻을 품고 있죠.
벤 고햄(Ben Gorham)
인도인 어머니와 캐나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벤은 스웨덴에서 태어나, 11살에 어머니의 재혼으로 캐나다로 가게 됩니다. 198cm의 큰 키와 운동에 관한 재능으로 촉망받는 농구 선수였던 그는, 프로 농구팀에 입단하기 위해 대학을 그만두고 스웨덴으로 돌아가지만, 영주권 문제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농구의 꿈을 접게 되죠. 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예 다른 분야로 방향을 틀어 스톡홀름 예술학교에서 순수 미술을 공부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유명 조향사 피에르 울프(Pierre Wulff) 때문에, 그림보다 향수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벤은 사진, 회화, 조각 같은 시각적이고 만질 수 있는 것을 다루었지만, 매우 추상적이고 장소와 기억의 모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향에 더욱 매료되었던 거죠. 향에 대한 그의 열정은 부엌에서 만든 캔들을 가지고 피에르 울프를 만나러 뉴욕까지 쫓아갈 정도였고, 피에르 울프는 벤 고햄의 가능성을 보고 자금을 지원해 주며 세계적인 조향사인 올리비아 자코베티와 제롬 에피넷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벤의 후각적 느낌을 바탕으로 초기 향 5가지가 탄생하고, 2006년 그는 바이레도를 설립하게 됩니다.
브랜드 특징
벤 고햄은 대부분 조향사와는 다른 접근 방식을 가졌습니다. 사실 향수 업계는 pedigree 혈통이란 게 있어서, 오랫동안 위계질서가 존재해 왔고, 알다시피 향수는 매우 프랑스적 제품이죠. 뛰어난 부분도 있지만, 정체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벤은 좋든 나쁘든 단순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50가지 원료를 사용하는 대신에 5가지, 10가지 정도의 원료로 작업했습니다. 샤넬과 싸워야 얻을 수 있는 멋진 향료가 있는데, 이를 가리고 다른 재료로 덮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스웨덴의 단순함과 관련 있을 수도 있고 말이죠. 명확성과 단순성이 그래서 바이레도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단순하면서 본연의 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개발하려면 많은 시도가 필요한데, 바이레도에서는 많게는 200회에 걸쳐 수정 후 출시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신제품 하나가 런칭될 때까지 보통 일 년 반 정도의 긴 시간이 필요한 편입니다.
패키징에서도 이 단순함이 중요했는데, 친구에게 포장에 있는 모든 라벨을 타이포그래피로 그려달라고 해서 만든 거라고 합니다. 특히 B는 벤이 농구할 때 쓰던 등번호 13을 상징하기도 해요. 한참 공방에서 바이레도 디자인 향수병이 유행하기도 했었죠? 디자인도 단순하고 예쁘지만, 탁 붙는 자석 뚜껑이 참 매력적인데, 벤 고햄은 마음에 드는 향수 용기와 라벨을 찾기 위해 전 세계를 2년 동안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확장
2015년 최초로 레더 컬렉션을 출시하며 현재는 향수와 향기 제품 뿐 아니라 가방, 지갑, 의류, 메이크업 제품까지 출시하고 있습니다. 2020년 바이프로덕트(BYPRODUCT)라는 2000년대 초 NBA 스타에서 영감받은 패션 라인을 공개하며 패션 부분도 강화하는 모습이에요.
브랜드는 2014년 만자니타캐피탈(딥티크를 인수했던)에 지분을 넘겼지만, 벤 고햄은 현재까지 바이레도의 명실상부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Collaboration
벤 고햄의 절친으로 알려진 ‘버질 아블로’의 ‘OFF WHITE’ 와의 콜라보, ‘엘리베이터 뮤직’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음악처럼 편안하고 익숙한 향. 즉, “인생의 배경 음악 같은 향기”를 의미합니다.
그 외에도 안경 제조업체 올리버 피플스, 세계적인 포토그래퍼 크레이그 맥딘 과의 캡슐 컬렉션. 트레비스 스캇 과의 콜라보 향수 TRAVX SPACE RAGE,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이사마야 프렌치 와의 콜라보, 이케아 와의 콜라보 향초 OSYNLIG까지 많은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있어요.
Perfumes
바이레도의 향수 이름은 벤 고햄의 개인적인 기억이나 그가 좋아하는 장소, 영감을 받은 소재 등에서 지은 거라고 합니다. 기억과 추억을 자극하는 향기, Byredo 바이레도라는 브랜드 네임과 딱 어울리게 말이죠. 그중에 7가지 향수를 소개해 드릴게요.
(” “의 인용구는 벤 고햄의 인터뷰 중에서 인용하였습니다.)
Green
벤 고햄이 아버지를 떠올리며 만든 초기 향.
아버지에게서 났던 초록색 완두콩 냄새를 떠올리며 조향.
“제가 처음으로 만든 향수는 어린 시절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에요. 아버지에게서 특정한 냄새가 났기 때문에 여러분도 공감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기억이 감정적 자극으로 이어지길 바랐습니다.
봄에 나오는 이 향료를 한동안 작업해 왔는데, 원료가 동물적인 노트여서 상당히 강렬했어요. 염소 냄새가 나는데, 저희는 농담으로 ‘More goat…less goat.’라고 했었죠.😂”
Encens Chembur
벤 고햄이 가장 좋아하는 향.
어머니를 위한 인도 모티브 향수.
“가장 좋아하는 향수를 꼽으라면, 어머니가 태어나고 자란 인도의 한 장소를 모티브로 한 향수를 아주 일찍부터 좋아했습니다. 뭄바이 외곽에 있는 그곳은 어렸을 때 피크닉 장소로 방문했던 기억이 나는 매우 푸르른 곳이었어요. 성인이 되어 돌아왔을 때 그곳은 엄청나게 개발되었지만, 냄새는 똑같았어요. 제 마음을 울린 것은 힌두교 사원의 향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향을 기반으로 향수를 만들었습니다.”
Blanche
벤 고햄의 (향수를 쓰지 않는) 여친을 위한 향수.
순수함과 깨끗함을 상징하는 ‘흰색’이라는 뜻.
“제 여자 친구는 바이레도 향들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뿌리지는 않아요. 그래서 제가 블랑쉬라는 향수를 만들어 줬어요. 그랬더니 3주 동안 향수를 뿌렸어요. 그녀는 매우 까다로워요… 향수를 전혀 안 뿌려요. 그래도 그녀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좋은 아이디어를 얻고 있는 것 같아요.”
Rose Of No Man’s Land
1차 세계 대전 당시 간호사들의 희생과 연민을 기리기 위한 향수.
무인지대의 장미처럼 외유내강한 로즈향.
The Rose of No Man’s Land, 프랑스어로 La rose sous les boulets.
1차세계대전의 최전선에 있었던 적십자 간호사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작곡된 노래를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치료했던 그녀들을 기억하며 군인들은 간호사 문신을 하기도 했다죠.
2015년 출시된 이 제품은 수천 명의 생명을 구한 간호사분들의 헌신과 노고에 대한 찬사를 담았다고 합니다.
La Tulipe
봄의 첫 꽃봉오리인 튤립에서 영감받은 향.
유명한 생화 향수.
튤립은 벤 고햄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튤립 향은 코스메틱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왜 그럴까요? 튤립은 자르면 향기가 사라지기 때문에 튤립 향은 상상 속에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래요.
벤 고햄의 조향 목표는 “튤립의 특징인 수줍음을 표현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튤립은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 중 하나로, 이 향수는 다양한 종류의 튤립에서 추출한 오일을 블렌딩해서 상큼한 봄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Bal d’Afrique
벤 고햄이 가장 만들기 어려웠던 향수.
아버지의 일기에서 영감받은 향.
고햄은 한 인터뷰에서 발 다프리크가 가장 만들기 어려웠던 향수라고 언급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런 레퍼런스 없이 처음으로 브리프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는 아버지의 아프리카 여행에 관한 일기를 읽은 후 베르가못, 자스민 꽃잎, 베티버 등을 혼합한 이 향수를 만들었습니다. 발다프리크는 무도회를 뜻하는 프랑스어 ‘발 Bal’과 아프리카를 뜻하는 ‘아프리크 Afrique’가 합쳐진 이름이에요.
Mojave Ghost
모하비 사막의 고스트 플라워처럼 강인하고 특별한 향.
모하비 사막, 이 건조한 황무지에서는 감히 꽃을 피우는 식물이 드물죠. 이런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꽃을 피우는 고스트 플라워에서 영감받은 이 향수는 생명력과 생존의 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알콜프리 제품도 출시했어요.
마무리
뉴스레터에 2번에 걸쳐 실었던 꽤 긴 포스팅의 마무리를, 벤 고햄의 인터뷰 한 구절로 하려 합니다.
“사람들은 항상 저에게 ‘어떤 향수를 써야 하나요?’ 라고 묻습니다. 자신에게 편안하고 자신 있게 뿌릴 수 있는 향수를 찾는 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제 생각에는 어떤 것을 입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입느냐(the way you wear it as opposed to what you wear)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